주님! 하고 불러놓고 아무 말도 못하였네

                                             - Fr. 남상근(라파엘) 


어느 날 성체 등만 지키고 있는 감실 앞에 앉아

내 지치고 힘들어서

주님께 말씀드리려고

주님! 하고 불렀다가

제대 위 바라보니

주님 지고 가신 무거운 십자가 생각나서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였네 



너도 나처럼 지쳤구나 너도 나처럼 힘들구나

말없이 말씀하시는 당신이 내 마음 이어서

아무 말도 못하였네



어느 날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고 아픈 탓에

사람이 아니라 당신 앞에 무릎꿇고

내 위로 받고 싶어서

주님께 말씀드리려고

주님! 하고 불렀다가

피땀으로 기도하신 겟세마니의 주님이 생각나서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였네

 


너도 나처럼 아프구나 너도 나처럼 위로 받고 싶구나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당신 눈길이 내게 다가와

아무 말도 못하였네

 


매일 매일 다가오는

내 십자가 너무 무겁디무거워

견디기 힘들다고 투정하려고

고개 숙이고 한숨쉬면서

주님께 말씀드리려고

주님 ! 하고 불렀다가

세 번이나 쓰러지시며 골고타 오르신 주님 생각나서

차마 말씀드리지 못하였네

 


너도 나처럼 무겁구나 너도 나처럼 쓰러졌구나

오히려 내게 위로해 달라시던 당신음성이 들려와서

아무 말도 못하였네



가족들도 친구들도 나를 이해 못해서

속상하고 답답하기만 한날

주님은 아시겠지 하고

주님께 말씀드리려고

주님 ! 하고 불렀다가

고향에서도 모욕당하시고

제자들에게도 버림받으신 나의 주님 생각나서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네

 


나도 너하고 똑같았단다 나도 너처럼 이해 받지 못했단다

주님께서도 속상하셨다기에

주님께서도 버려지셨다기에

아무 말도 못하였네



기도조차 할 수 없던 어느 날에도

십자가 위에 달려

피 흘리시며 기도하신

당신을 생각하면

아무 말도 못하겠고

사랑이 다 식어 버린 차가운 날에도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신 말씀이 떠올라 아무 말도 못하겠고

 


쩔쩔매며 지낸 하루였어도

받아 먹어라 받아 마셔라 -

남김 없이 내어주신 당신 몸과 피가 어른거려 아무 말도 못하는 나는....

 


주님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불평 할 수 없게 하시는 탓에

힘이 들고 어려워도

주님의 고난에 차마 비길 수 없어

차마 힘들다 말 할 수 없어



주님 ! 하고 불러놓고

아무 말씀도 드릴 수가 없었네.

             일상의 기적 

            
                                         - 윤세영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 조차 힘들었다.

그러자 
하룻밤 사이에 
사소한 일들이
굉장한 일로 바뀌어 버렸다.

세면대에서 
허리를 굽혀 세수하기,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줍거나
양말을 신는 일, 
기침을 하는 일,

앉았다가 일어나는 일이
내게는 더 이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별수 없이 병원에 다녀와서
하루를 빈둥거리며 보냈다. 
비로소 
몸의 소리가 들려왔다.

실은 그동안 
목도 결리고, 
손목도 아프고,
어깨도 힘들었노라, 
눈도 피곤했노라,
몸 구석구석에서 불평을 해댔다.

언제까지나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던 나의 몸이, 이렇게 기습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줄은 
예상조차 못했던 터라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 중이다.

이때 중국 속담이 떠올랐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에서 걸어 다니는 것이다.”

예전에 싱겁게 웃어 넘겼던 그 말이 다시 생각난 건,
반듯하고 짱짱하게 걷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괜한 말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과 후’가 
이렇게 명확하게 갈리는 게 몸의 신비가 아니고 무엇이랴!

얼마 전에는 젊은 날에
윗분으로 모셨던 분의 병문안을 다녀왔다.

몇년에 걸쳐 
점점 건강이 나빠져
이제 그분이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눈을 깜빡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예민한 감수성과 
날카로운 직관력으로 
명성을 날리던 분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한때의 빛나던 재능도 다 소용 없구나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돌아오면서 
지금 저분이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혼자서 일어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웃으며 이야기하고, 
함께 식사하고, 
산책하는 등
그런 아주 사소한 일이 아닐까.

다만 그런 소소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대개는 너무 늦은 뒤라는 점이 안타깝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한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말이다.

사나흘 동안
노인네처럼 파스도 붙여 보고
물리치료도 받아 보니 알겠다.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크게 걱정하지 말라는 진단이지만 
아침에 벌떡 일어나는 일이 감사한 일임을 
이번에 또 배웠다.
건강하면 다 가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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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5.)여기까지가 수필가 '윤세영' 선생님의 글이었습니다.
이후의 글은 '일상의 기적'이라는 글에 대한 다른분의 의견으로 보입니다.
알려주신 '치유산틴'님께 감사드립니다.
* 참고 : https://m.blog.daum.net/act4ksj/137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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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며 살자!

지금, 감사를 느끼고 계시는지?

우리들이 입으로는
감사를 외치지만
진정으로 느끼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이라고 하니
눈 두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이 들고 

 신장 바꾸는 데는
 3천만원,

심장 바꾸는 데는 
5억원,

간 이식 하는 데는
7천만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든답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도로 한 가운데를 질주하는
어떤 자동차보다 비싼 
훌륭한 두발 자가용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는 기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
산소호흡기를 쓰면
한 시간에 36만원을 내야 한다니

눈, 코, 입 다 가지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면서 공기를 
공짜로 마시고 있다면
하루에 860만원씩 버는 샘입니다.

우리들은 51억짜리 몸에
하루에 860만원씩 
공짜로 받을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요?

그런데 왜
우리는 
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건 
욕심 때문이겠지요.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없고,
기쁨이 없으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행복을 누릴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은 
행복이라는 정상에
이미 올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잎 클로버는 행복!
네잎 클로버는 행운?

행복하면 되지 
행운까지 바란다면 그 또한 욕심이겠지요.

오늘부터
지금부터
숨 쉴 때마다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일상의 기적 / 윤세영

일상의 기적 / 윤세영 덜컥 탈이 났다. 유쾌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귀가했는데 갑자기 허리가 뻐근했다. 자고 일어나면 낫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아침에는 침대에서 일어나기조

blog.daum.net

 


낙산에서의 '말씀 한 모금' - Fr.남상근 라파엘(불량신부)

주님 공현 대축일 (2018.01.06)


주신 말씀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헤로데는 백성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을 모두 모아 놓고, 메시아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이 헤로데에게 말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사실 예언자가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의 주요 고을 가운데 결코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너에게서 통치자가 나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보살피리라.’”

그때에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는,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말하였다.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 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 (마태 2,1-12)


동방 출신의 박사로 알려진 세 인물이 먼 이국에서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경배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탄시기를 마감하게 됩니다. 이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아와 예방한 일을 통해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신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기에 교회는 오늘 지내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성탄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이 박사들은 전통적으로 동방에서 왔다고 합니다. 지금의 이란 정도에 해당하는 페르시아인지 다른 어느 곳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에서 별의 인도를 받아서 베들레햄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긴 여정이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 여정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변변한 교통 수단도 없고 예상하지 못한 온갖 어려움도 겪어야 했겠지요. 천신만고 끝에 그들은 아기 예수님과 만납니다. 우리가 각자의 삶의 끝에서 누구를 만나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구세주를 만나는 것 이외의 다른 목적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은 사막의 갈증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모래 폭풍의 난관도 헤쳐 나가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목적이 없을 때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무의미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목적이 분명하면 어려움은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동방 박사들이 품은 목적은 기다려왔던 구세주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목적이 이루어질 목적지가 어디인가는 처음에는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목적은 분명한데 언제 어디서 이루어질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았기에 더 어려운 여행일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하다보면, 가다 보면 결국은 목적이 이루어지는 때와 장소에 가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먼 거리를 오면서 그들은 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귀한 예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이 아기에게 바쳐졌습니다. 그것은 크나큰 존경을 담고 있는 선물입니다. 생각해보면 동방 박사가 먼 길을 나서면서 목적지가 어딘가는 불분명했기에 생존에 필요한 많은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과 식량과 삶을 지켜줄 필수품들로 여행을 떠날 짐을 꾸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만을 위한 것들만 가득 채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내게 필요한 짐꾸러미에 그들은 여유 공간을 마련해서 세 가지 귀한 것들을 따로 가려놓았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은 귀한 것이긴 하지만 여행자의 생존에 직접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선물일 따름입니다. 그러나 생존도구만이 아니라 만나게 될 생명이신 주님께 드릴 무엇인가를 갖추었고 그것이 주님의 왕권과 신성과 죽음을 경배하기 위한 예물로 바쳐졌습니다.


그들은 생명을 찾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존을 위한 어떤 부분을 희생하였습니다.  자신을 위한 도구를 줄이면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그들이 여행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 불편을 감수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살이에 당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하느님을 위한 것을 채우는 것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여 마침내 목적을 이루게 되었을 때 드릴 무엇인가가 준비되어 있는 사람, 그는 행복합니다.  불량 신부


#목적이있는시련은어떤어려움도이겨내게한다 #하느님의자녀로살아가기위한자세 #나를비우고빈자리를만들자

높고 푸른 사다리 - 공지영 / P376 / 한겨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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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소설이지 않은 하느님의 예비하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역사에 대하여 큰 관심없었던 나에게 과거 한국전쟁의 실화를 기반으로 작가의 생각을 풀어내는 문장들이 가톨릭 신자인 나의 마음을 두들였다.

자연을 묘사한 문장들도 많았지만 수사님들의 생각과 연륜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더욱 와닿았고, 이제는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왜관 수도원의 전경과 성당, 작업장, 소세지, 미사주 등 이제와 다시 떠올려보면 어린시절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요한수사가 된 요량인듯...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P.13 "Ora et Labora."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유명한 베네딕도의 말과 함께 "당신이 진리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보다 더욱 침묵을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이 수도원 내부로 향하는 문 입구에 붙어 있었다.
(모든 내면의 생각과 행동에 앞서 주님께 의탁하라.)

P.15 "저기 복도에서 대걸레를 밀고 계시는 저 노수사(老修士)님처럼 살다가 죽고 싶어서오."
(어떠한 위대함 보다 평범함에 꾸준할 수 있는)

P.42 (미카엘) "하필이면 책을 폈는데 이런 구절이 나오는 거야.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 오, 인간이여. 네가 인간임을 알라! 너의 완전한 겸손은 네가 너를 아는 데 있다.' 휴우, 이럴 때가 제일 힘들어. 베네딕도 성인은 '네가 오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느니 차라리 겸손으로 실수를 해라' 하셨다는데
(차라리 솔직해져!)

P.69 (안젤로)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미카엘) "맞아, 요한. 생에 모든 해답은 언제나 고독과 고통 속에 있다! 내가 잠시 그걸 잊었어."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평와 속에서...)

P.119 "잎이 필 때 사랑했네 / 바람 불 때 사랑했네 / 물들 때 사랑했네 / 빈 가지, 언 손으로 / 사랑을 찾아 / 추운 허공을 헤맸네 / 내가 죽을 때까지 / 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김용택 시인의 시 <그래도 당신>
샤를 드 푸코 성인의 책 "그 슬픔은 나를 온통 벙어리로 만들었으며 사람들이 축제와 향연을 벌일 때면 더욱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습니다. 내가 베푸는 파티에서도 한순간이 지나면 오히려 깊은 침묵에 빠졌고 마침내는 모든 것이 역겨워졌습니다."

P.165 아빠스님이 이야기했던 "이 고통 속에서 신이 내게 물으시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 실은 내가 이 고통 때문에 뜻밖에도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통을 겪지 않으면 지금의 행복을 알 수가 없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내가 계속 간직해야하는 것)

P.167 ..... 요한 수사님, 누가 요한 수사님보다 더 슬플 수 있을까마는 '하느님이 주신 것 하느님이 도로 가져가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욥기의 구절로 저도 버티고 있어요. .... 힘내세요."
(헤어짐의 슬픔을 그저 '견디는')

P.168 나는 내가 가진 지극한 슬픔도 그보다 더 지극히 슬픈 사람을 위로하면 덜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나의 고통을 잠시 잊었고 그녀의 고통에 깊이 감화되었다. 뭐랄까, 아래로만 치닫던 슬픔이 나의 아픔에만 집중되던 고통이 다른 이를 향해만 가던 분노가 평화와 위로와 나눔으로 반전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도 나는 마음이 아플 때는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쏟는 것으로 나의 고통을 달래곤 했다. 어쩌면 치유는 위로받는 자에게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에게 일어나는지도 모르니까. 아니, 위로받는 자와 위로하는 자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고통받는다고 느낄 때야말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P.205 "하느님이 저 같은 것을.... 좋아하실까요, 신부님?"
         "그럼요. 당신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은 너를 사랑하셔...!!!)

P.209 (수련장 신부님) "요한 수사님, 1500여년 전 베네딕도 성인부터 오늘의 젊은 지원자까지 우리는 모두 같은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한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중해야 합니다. 언제나 잊지 말아야할 한 가지 사실은 우리가 택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당신보다 잘 아시며,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복도에 선 십자가 앞에 섰다.
무력하게 고통스럽게 비참하게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프고 무력할 수 없는 십자가에 달린 그 사람에게 나는 말했다.
"당신도 하느님의 택함을 받았군요. 당신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군요. 그래서 그렇게 아팠군요."

P.226 (토마스 수사님)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 그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이제 어떤 의미로 서로 맺어진다는 것을 뜻하지요. 인형에게 애완견에게 혹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들이 나와 관계를 맺게 되고 모든 관계를 맺은 것들을 추억이라는 것을 공유하게 되듯이 말이지요.

P.232 (요한신부) <사랑의 송가(訟歌)>, 고린도 전서 13장에 곡을 붙인 그 노래 말이지요.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해도 나에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요란한 꽹과리나 징에 지나지 않네. 네게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네. 내가 모든 ㅈ산을 나누어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사랑 없으면 그 무슨 소용없네.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네. 아무것도 아니라네.'
노래를 머친 그가 저를 바라보았어요.
  '토마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말이야. 우리가 천사의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예언하지도 못하고 지식도 없고 심오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도, 심지어 하느님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가 우리의 몸을 다 바치고 있지 못한다 해도, 사랑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는 거겠지.'
  한 번도 그 구절을 거꾸로 해석해본 적이 없기에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요한 신부는 누더기를 입은 두 팔을 올려 하늘을 향했어요. 아직도 그 장면을 기억하는데 나는 그에게서 어떤 빛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어요. 그가 다시 말했죠.
  '우리가 이 시련을 다 이긴다 해도, 우리가 심지어 여기서 하느님을 위해 순교한다 해도, 아니 자네와 내가 여기서 이 모든 사람을 무찌르고 탈출한다 해도 우리가 이 시련을 사랑이 아니라 악으로 참아내는 거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라네!.'

P.263 너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 알잖니? 나는 갑각류와 같은 사람이란다. 나는 뼈가 피부 밖에 있는 사람이야. 뼈가 피부 밖에 있기에 왠만하면 찔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찔리고 나면 그것을 빼낼 방법이 없단다. 그런 면에서 그토록 상처 입는 연한 피부를 뼈 밖에 내어놓고 다니는 포유류가 진화의 우위에 서 있는 건 너무 옳다. 그들은 자주 찔리긴 하지만 곧 떼어낼 수 있고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 되니까. 그런 나에게 그 사랑은 치명적이었단다.
(갑각류... 나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상처받지 않을 용기, 갑각류라는 표현이 참...)

P.290 절망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이란.... 요한, .... 사랑이란 모든 보답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님을, 사랑은 대가가 없는 것임을. 사랑은 오래 견디고 오래 참고 오래 바라며 사랑은 결국 주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는 것을.

P.293 "왜 돌아오셨습니까? 이 죽음과 고문의 땅에? 그리고 왜 떠나지 않으셨습니까? 잔인한 신을?" 토마스 수사님은 앙상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뜻밖에도 그의 손은 따뜻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사랑했으니까요."
  저도 여러 번 제 자신에게 물었답니다. 왜냐고.... 때로는 나 자신이 바보 같고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죠. 사랑했으니까요. 하느님도 한국도. 사랑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아니니까요.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르는 거니까요." 그의 마지막 말은 고린도 전서 13장의 구절 같았다.
  "그럼 그게 당신의 길일 거예요. 예수님도 골고다를 좋아서 오르신건 아니었죠."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누군가가 뜨거운 물을 끼얹은 듯, 충격이 왔다.
  "요한 수사님, 오늘은 창밖으로 바람이 많이 불더라구요. 바람은 잡을 수 없어요. 한 방향으로만 불어 가니까요. 그리고 가버리니까요. 강물도 그렇죠. 한번 흘러간 강물은 더 이상 방금 전의 그 강물이 아니죠. 시간도 한 방향으로만 흘러요. 말할 것도 없죠. 이 세상의 모든 흘러다니는 것 가운데 어떤 한순간 한 지점에서 양방향으로 흐르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에요. 그러나 그것조차 대개는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우리는 불평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지요. 아니 사랑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쓰는 것이 좋을까? 더 나을까? 의미가 있을까? 10년이 지나도 잘했다고 느낄까?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합니다."

P.311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르니까요." "우리에게 비록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없다 해도, 우리가 이상한 언어를 말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가 남을 위해 죽지는 못한다 해도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괜찮다 요한, 그래도 괜찮다."
  나는 잠시 당황했고, 머뭇거렸고, 정말입니까 묻기도 전에 몹시 울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P.313 그런데 요한 수사 그거 아나? 이 세상에 참나무런 건 없다는 거 말이야." 참나무란 참나무 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들의 공통 명칭이라는 것을." "참나무는 20년은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하네. 물론 그 전에 그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 싹을 틔우는 것도 몇 개 되지 않고 말이야. 그렇게 싹이 났다고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죽는 일도 비일비재. 여러 해충에 약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다니.... 그때 생각했어. 이렇게 약하고 어찌 보면 느린 나무에게 참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 조상들을 말이야. 심시여 평균 수명도 짧았을 그 시기에 자신이 심었다 해도 살아서는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그 나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참이라는 말을 붙여주다니....
  나는 어쩌명 우리 수도자들이 참나무 등속과 닮은 건 아닌가 생각해보았네.... 우리도 참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다 모여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우리를 모두 수도자라고 부르지만, 모양도 다 다르고 쓰임새도 다 다르고 심지어 제복들도 다르고.... 그렇지만 우리는 수도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거.... 닮았다고.... 그렇게 20년을 잘 참아내면 참나무는 수백 년을 살기도 하네. 풍성한 그늘과 열매를 주고 퇴비가 되는 잎을 주기도 하며 숯을 만들게 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러면서도 같은...) 

P.318 "수도 생활만 그렇겠니? 사는 게 그렇단다. 포기하고 기도하고 포기하고 기도하고.... 밤새 포기한다고, 버리겠다고 기도하고 그러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에 누가 다시 주워다가 그 욕망들을 다시 내 안에 넣어놓는지 나는 다시 처음부터 비우고 버린단다. 매일 말이다."
(매일매일 비우기)

P.345 그러자 마리너스 수사님이 아빠스님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감사를 받을 대상은 제가 아닙니다..... 삶이 복잡한 것 같아도 실은 그저 단순한 것 같습니다. 선원들이 바다에 나가면서 최초로 배우는 격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면 그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배라도, 아무리 큰 배라도 배와 배가 운반하는 모든 것의 안전은 바로 이 원칙에 달려있습니다. 서로 돕는 배는 모든 난관을 이겨냅니다. 서로 돕지 않는 배는 작은 난관에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 원칙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처럼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서로 돕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약하고 모자라니까요."

P.355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날 배를 운전한 것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그대로 놓아주세요. 힘을 빼고 즐거워하세요. 그러면 어떤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

P.371 지난해 결국 하늘나라로 가신 토마스 수사님이 언제나 내게 말했었다.
"사랑은 가시지 않아요.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르는 거니까."
슬픔도 희석되고 실은 아픔도 아팠다는 사실만 남고 잘 기억되지 않지만, 사랑은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젊음아 거기 남아 있어라, 하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랑아, 언제까지나 거기 남아 있어라.

글자전쟁 - 김진명 / P.343 / (주)새움출판사 / '15.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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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7.07.09(일)~12(수)

우리나라에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외국어 아닌 외국어 '한자/한문'을 단순히 외국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외국어라 할 수 없다면 우리말인가? 너무도 당연히 중국의 것이라고 답하지 않나?

하지만 당연히 중국의 것이라고만 하기에는 좀더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다. 라는 것이 작가가 '글자전쟁'에서 하고픈 이야기이지 않았을까?

글자전쟁을 읽고 작가의 생각을 가늠해본다.

기원전 1600년경 건국되어 기원전 1046년에 주나라 무왕에게 망하는 은나라와 은나라의 언어인 '은자' (역사학으로는 수도가 '상'이어서 상나라 라고도 한다.)

공자의 '서경' 무성편에 은나라 주왕이 주지육림에 빠져 포락을 즐기는 등 백성을 무자비하게 죽이고 착취하기에 주나라 무왕이 태공망 여상을 앞세워 은을 정벌했다고 하고

그 말미에는 '화하만맥 망불솔비/화하만맥이 따르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라는 말로 망국에 관한 글이 있는데 화하라 함은 한(韓)을 말하고 만맥이라 함은 남만과 동이의 일파인 맥족을 말하는 것이니, 이는 한족이나 남만족이나 동이족이나 할 것 없이 모두 크게 기뻐하며 주 무왕의 거사를 따랐다는 뜻이다.

주나라 무왕에 의해서 나라가 망했는데 망국의 백성이 망하게한 나라의 임금을 칭송했다(?) 라고 할만큼 은나라의 주왕이 타락했었을까? 훗날 맹자는 '서경'을 믿느니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하다(진신서즉 불여무서)라고도 했고, 자공(공자가 아끼는제자)은 은왕이 기록된 것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는데...

여기에 사마천은 전설상의 인물 황제를 실존 인물로 만들어 그 자손인 탕왕이 은나라를 건국하였다고 하는데, 이 황제는 공자의 '서경'에서도 나오지 않고 오직 사마천의 기록에서만 언급되어있다면? 이렇게 은나라는 동이족의 나라였지만 한 사람의 성인과 한 사람의 위인이 화하족의 나라로 바꾸어 것이라면?

역시나 역사란 승자만의 기록일까?

작가는 우리에게 이런 물음을 던진다.
공자(성인)와 사마천(위인)이 의도적으로 왜곡하여 은나라 자체가 동이족의 나라였지만 화하족의 나라로 탈바꿈되고 우리가 당연히 중국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온 '한자'는 이 은나라 유물인 갑골문자. 즉, 은나라 언어인 '은자'가 변형된 것이라는 것이다.

김진명 작가의 소설은 충분한 사실을 기반으로 이야기하고픈 내용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대중에게 알리려 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단숨에 재미있게 읽었지만 항시 읽은 뒤에 느껴지는 답답함과 왠지 모를 무력감에 먹먹하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게 조금씩 조여오는 중국의 동북공정, 요하공정이 무서울 따름이다.

행복의 조건 - 조지 베일런트 / 이시형 감수 / 이덕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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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발달연구로부터 찾아낸 수많은 주요 성과

* 우리에게 일어났던 나쁜 일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행복한 노년은 우연히 만난 훌륭한 인물들 덕분에 보장되기도 한다.

* 인간관계의 회복은 감사하는 자세와 관대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이루어진다.

* 50세에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면 80세에도 행복한 노년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50세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다고 해서 80세에 반드시 건강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 알코올 중독은 (불행한 유년 시설과는 관계없이) 분명 실패한 노년으로 이어진다. 알코올 중독은 부분적으로 장차 얻을 수 있을 사회적 지원을 가로막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 은퇴하고 나서도 즐겁고 창조적인 삶을 누려라. 그리고 오래된 친구를 잃더라도 젊은 친구들을 사귀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수입을 늘리는 것보다 한층 더 즐겁게 살 수 있다.

* 객관적으로 신체건강이 양호한 것보다 주관적으로 건강상태가 좋다고 느끼는 것이 성공적인 노화에 훨씬 더 중요한 요소다. 다시 말해 스스로 자신이 병자라고 느끼지 않는 한 아프더라도 남이 생각하는 것만큼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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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무엇일까? 어떤 것이기에 거기에 걸맞은 조건이 필요할까? 라는 물음으로 선택하게 된 '행복의 조건'

여러 보고서가 사례와 함께 담겨 있는 두꺼운 책(500페이지가량)
아직 다 읽은 것도 아니고 당장은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시간을 내어서 언제고 다시 볼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도서관 반납기일도 있고, 요즘 여러 책을 뒤적이고 있기도 하지만 개중 다른 것을 먼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살아감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 가운데 하나인 '인간관계' 그 틀어짐을 바로 잡을 방법으로 언급된
밑줄 그은 - 인간관계의 회복 : 감사와 내면 들여다 보기
책에 쓰인 주요 성과 중 내 생각과 행동에 적용해봄 직한 문구였다.

"마음먹는 것에 따라서 상대방도 달리 보인다."라고 생각하던 나를 정리해주는 듯한 문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올 한해 만나는 모든 분에게 '내 생각 + 감사와 내면 들여다보기'를 담아보자.

하인리히법칙

- 1930년대 초 미국 보험회사의 관리 감독자였던 하인리히가 주장한 법칙으로

  그가 분석한 5,000여건의 산업재해에서 발견된 숫자,


1 : 29 : 300


하나(1)의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29번의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더 경미한 징후는 300번씩이나 일어난다.

가져온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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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리했는지 대단!

크리스찬의 비상연락망

1.위험에 처했을 땐 시편 91편으로 가세요.

2.외롭거나 두려울때 시편 23편으로 가세요.

3.신앙인으로써 확신 필요할 때 로마서 8장 1-30절로 가세요.

4. 평안과 휴식을 원하시면 마태복음 11장 25-30절로 가세요.

5. 죄를 지었을 때는 시편 51편으로 가세요.

6. 근심이 있을 때에는 마태복음 6장 19-34절로 가세요.

7. 괴로움과 위기안에 있을때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8. 풀이 죽어 있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을 때는 로마서 8장 31-37절로 가세요.

9. 일 & 여행으로 집을 떠나있을때 시편121편 으로 가세요.

10. 믿음의 발동이 필요할 때는 히브리서 11장으로 가세요.

11. 좁고 이기적인 맘으로 기도할 때는 시편 67편으로 가세요.

12. 슬플 때는 요한복음 14장으로 가세요.

13. 사람이 실망시킬 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14. 하느님이 멀게 느껴 질때는 시편139편으로 가세요.

15. 세상이 위대하게 보일 때는 시편90편 으로 가세요.

16. 열매를 많이 맺고 싶으면 요한복음 15장을 가세요.

17. 의기소침할 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18. 세상이 작아 보이고 자신은 커 보일때는 시편 19편으로 가세요.

19. 돈이 없을 때에는 시편 37편으로 가세요.

20. 사람들이 불친절해 보이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21. 내가 한 일에 낙심될 때 시편 126편으로 가세요.

22. 아주 좋은 기회가 있으면 이사야 55장 으로 가세요.

23. 다른 사람과 잘 지내려면 로마서 12장 으로 가세요.

이렇게 동기부여 해
줄 수 있는 조력자인 성경이 있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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