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 공지영 / P376 / 한겨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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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지만 소설이지 않은 하느님의 예비하심이 놀라울 따름이다.
역사에 대하여 큰 관심없었던 나에게 과거 한국전쟁의 실화를 기반으로 작가의 생각을 풀어내는 문장들이 가톨릭 신자인 나의 마음을 두들였다.

자연을 묘사한 문장들도 많았지만 수사님들의 생각과 연륜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더욱 와닿았고, 이제는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왜관 수도원의 전경과 성당, 작업장, 소세지, 미사주 등 이제와 다시 떠올려보면 어린시절 마음의 풍요를 느낄 수 있었던 순간들이 떠올라 감정이입이 되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요한수사가 된 요량인듯...

"삶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 -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P.13 "Ora et Labora." '기도하고 일하라'라는 유명한 베네딕도의 말과 함께 "당신이 진리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보다 더욱 침묵을 사랑하십시오"라는 말이 수도원 내부로 향하는 문 입구에 붙어 있었다.
(모든 내면의 생각과 행동에 앞서 주님께 의탁하라.)

P.15 "저기 복도에서 대걸레를 밀고 계시는 저 노수사(老修士)님처럼 살다가 죽고 싶어서오."
(어떠한 위대함 보다 평범함에 꾸준할 수 있는)

P.42 (미카엘) "하필이면 책을 폈는데 이런 구절이 나오는 거야. '하느님이 인간이 되셨다. 오, 인간이여. 네가 인간임을 알라! 너의 완전한 겸손은 네가 너를 아는 데 있다.' 휴우, 이럴 때가 제일 힘들어. 베네딕도 성인은 '네가 오만을 가지고 선을 행하느니 차라리 겸손으로 실수를 해라' 하셨다는데
(차라리 솔직해져!)

P.69 (안젤로)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미카엘) "맞아, 요한. 생에 모든 해답은 언제나 고독과 고통 속에 있다! 내가 잠시 그걸 잊었어."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평와 속에서...)

P.119 "잎이 필 때 사랑했네 / 바람 불 때 사랑했네 / 물들 때 사랑했네 / 빈 가지, 언 손으로 / 사랑을 찾아 / 추운 허공을 헤맸네 / 내가 죽을 때까지 / 강가에 나무, 그래서 당신." 김용택 시인의 시 <그래도 당신>
샤를 드 푸코 성인의 책 "그 슬픔은 나를 온통 벙어리로 만들었으며 사람들이 축제와 향연을 벌일 때면 더욱 끈질기게 나를 괴롭혔습니다. 내가 베푸는 파티에서도 한순간이 지나면 오히려 깊은 침묵에 빠졌고 마침내는 모든 것이 역겨워졌습니다."

P.165 아빠스님이 이야기했던 "이 고통 속에서 신이 내게 물으시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 실은 내가 이 고통 때문에 뜻밖에도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고통을 겪지 않으면 지금의 행복을 알 수가 없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도 내가 계속 간직해야하는 것)

P.167 ..... 요한 수사님, 누가 요한 수사님보다 더 슬플 수 있을까마는 '하느님이 주신 것 하느님이 도로 가져가시니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욥기의 구절로 저도 버티고 있어요. .... 힘내세요."
(헤어짐의 슬픔을 그저 '견디는')

P.168 나는 내가 가진 지극한 슬픔도 그보다 더 지극히 슬픈 사람을 위로하면 덜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나의 고통을 잠시 잊었고 그녀의 고통에 깊이 감화되었다. 뭐랄까, 아래로만 치닫던 슬픔이 나의 아픔에만 집중되던 고통이 다른 이를 향해만 가던 분노가 평화와 위로와 나눔으로 반전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도 나는 마음이 아플 때는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쏟는 것으로 나의 고통을 달래곤 했다. 어쩌면 치유는 위로받는 자에게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에게 일어나는지도 모르니까. 아니, 위로받는 자와 위로하는 자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고통받는다고 느낄 때야말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P.205 "하느님이 저 같은 것을.... 좋아하실까요, 신부님?"
         "그럼요. 당신이 상상하시는 것 이상으로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느님은 너를 사랑하셔...!!!)

P.209 (수련장 신부님) "요한 수사님, 1500여년 전 베네딕도 성인부터 오늘의 젊은 지원자까지 우리는 모두 같은 고통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 한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신중해야 합니다. 언제나 잊지 말아야할 한 가지 사실은 우리가 택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를 먼저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당신보다 잘 아시며, 당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 길에 복도에 선 십자가 앞에 섰다.
무력하게 고통스럽게 비참하게 이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프고 무력할 수 없는 십자가에 달린 그 사람에게 나는 말했다.
"당신도 하느님의 택함을 받았군요. 당신도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군요. 그래서 그렇게 아팠군요."

P.226 (토마스 수사님)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 그것을 아십니까? 그것은 이제 어떤 의미로 서로 맺어진다는 것을 뜻하지요. 인형에게 애완견에게 혹은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들이 나와 관계를 맺게 되고 모든 관계를 맺은 것들을 추억이라는 것을 공유하게 되듯이 말이지요.

P.232 (요한신부) <사랑의 송가(訟歌)>, 고린도 전서 13장에 곡을 붙인 그 노래 말이지요.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해도 나에게 사랑이 없다면 나는 요란한 꽹과리나 징에 지나지 않네. 네게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네. 내가 모든 ㅈ산을 나누어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사랑 없으면 그 무슨 소용없네.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네. 아무것도 아니라네.'
노래를 머친 그가 저를 바라보았어요.
  '토마스,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말이야. 우리가 천사의 말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예언하지도 못하고 지식도 없고 심오한 진리를 깨닫지 못해도, 심지어 하느님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가 우리의 몸을 다 바치고 있지 못한다 해도, 사랑만 있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라는 거겠지.'
  한 번도 그 구절을 거꾸로 해석해본 적이 없기에 저는 조금 놀랐습니다. 요한 신부는 누더기를 입은 두 팔을 올려 하늘을 향했어요. 아직도 그 장면을 기억하는데 나는 그에게서 어떤 빛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어요. 그가 다시 말했죠.
  '우리가 이 시련을 다 이긴다 해도, 우리가 심지어 여기서 하느님을 위해 순교한다 해도, 아니 자네와 내가 여기서 이 모든 사람을 무찌르고 탈출한다 해도 우리가 이 시련을 사랑이 아니라 악으로 참아내는 거라면 우린 아무것도 아닌 게 되는 거라네!.'

P.263 너도 짐작하겠지만 나는 그런 종류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도 알잖니? 나는 갑각류와 같은 사람이란다. 나는 뼈가 피부 밖에 있는 사람이야. 뼈가 피부 밖에 있기에 왠만하면 찔리지 않는다. 그러나 한번 찔리고 나면 그것을 빼낼 방법이 없단다. 그런 면에서 그토록 상처 입는 연한 피부를 뼈 밖에 내어놓고 다니는 포유류가 진화의 우위에 서 있는 건 너무 옳다. 그들은 자주 찔리긴 하지만 곧 떼어낼 수 있고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면 되니까. 그런 나에게 그 사랑은 치명적이었단다.
(갑각류... 나 또한 비슷하지 않을까? 상처받지 않을 용기, 갑각류라는 표현이 참...)

P.290 절망 속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랑이란.... 요한, .... 사랑이란 모든 보답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 나는 알고 있었다. 사랑은 거래가 아님을, 사랑은 대가가 없는 것임을. 사랑은 오래 견디고 오래 참고 오래 바라며 사랑은 결국 주는 것을 그 본질로 한다는 것을.

P.293 "왜 돌아오셨습니까? 이 죽음과 고문의 땅에? 그리고 왜 떠나지 않으셨습니까? 잔인한 신을?" 토마스 수사님은 앙상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잡았다. 뜻밖에도 그의 손은 따뜻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사랑했으니까요."
  저도 여러 번 제 자신에게 물었답니다. 왜냐고.... 때로는 나 자신이 바보 같고 이해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알게 되었죠. 사랑했으니까요. 하느님도 한국도. 사랑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게 아니니까요.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르는 거니까요." 그의 마지막 말은 고린도 전서 13장의 구절 같았다.
  "그럼 그게 당신의 길일 거예요. 예수님도 골고다를 좋아서 오르신건 아니었죠."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누군가가 뜨거운 물을 끼얹은 듯, 충격이 왔다.
  "요한 수사님, 오늘은 창밖으로 바람이 많이 불더라구요. 바람은 잡을 수 없어요. 한 방향으로만 불어 가니까요. 그리고 가버리니까요. 강물도 그렇죠. 한번 흘러간 강물은 더 이상 방금 전의 그 강물이 아니죠. 시간도 한 방향으로만 흘러요. 말할 것도 없죠. 이 세상의 모든 흘러다니는 것 가운데 어떤 한순간 한 지점에서 양방향으로 흐르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에요. 그러나 그것조차 대개는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우리는 불평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지요. 아니 사랑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쓰는 것이 좋을까? 더 나을까? 의미가 있을까? 10년이 지나도 잘했다고 느낄까?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랑합니다."

P.311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르니까요." "우리에게 비록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없다 해도, 우리가 이상한 언어를 말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가 남을 위해 죽지는 못한다 해도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괜찮다 요한, 그래도 괜찮다."
  나는 잠시 당황했고, 머뭇거렸고, 정말입니까 묻기도 전에 몹시 울었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P.313 그런데 요한 수사 그거 아나? 이 세상에 참나무런 건 없다는 거 말이야." 참나무란 참나무 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들의 공통 명칭이라는 것을." "참나무는 20년은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하네. 물론 그 전에 그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 싹을 틔우는 것도 몇 개 되지 않고 말이야. 그렇게 싹이 났다고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죽는 일도 비일비재. 여러 해충에 약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다니.... 그때 생각했어. 이렇게 약하고 어찌 보면 느린 나무에게 참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 조상들을 말이야. 심시여 평균 수명도 짧았을 그 시기에 자신이 심었다 해도 살아서는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그 나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참이라는 말을 붙여주다니....
  나는 어쩌명 우리 수도자들이 참나무 등속과 닮은 건 아닌가 생각해보았네.... 우리도 참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다 모여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우리를 모두 수도자라고 부르지만, 모양도 다 다르고 쓰임새도 다 다르고 심지어 제복들도 다르고.... 그렇지만 우리는 수도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거.... 닮았다고.... 그렇게 20년을 잘 참아내면 참나무는 수백 년을 살기도 하네. 풍성한 그늘과 열매를 주고 퇴비가 되는 잎을 주기도 하며 숯을 만들게 하고
(비슷하면서도 다른 그러면서도 같은...) 

P.318 "수도 생활만 그렇겠니? 사는 게 그렇단다. 포기하고 기도하고 포기하고 기도하고.... 밤새 포기한다고, 버리겠다고 기도하고 그러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밤사이에 누가 다시 주워다가 그 욕망들을 다시 내 안에 넣어놓는지 나는 다시 처음부터 비우고 버린단다. 매일 말이다."
(매일매일 비우기)

P.345 그러자 마리너스 수사님이 아빠스님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었다. "아시지 않습니까. 감사를 받을 대상은 제가 아닙니다..... 삶이 복잡한 것 같아도 실은 그저 단순한 것 같습니다. 선원들이 바다에 나가면서 최초로 배우는 격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한다면 그를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배라도, 아무리 큰 배라도 배와 배가 운반하는 모든 것의 안전은 바로 이 원칙에 달려있습니다. 서로 돕는 배는 모든 난관을 이겨냅니다. 서로 돕지 않는 배는 작은 난관에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 원칙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처럼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서로 돕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약하고 모자라니까요."

P.355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그날 배를 운전한 것은 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신 자신을 그대로 놓아주세요. 힘을 빼고 즐거워하세요. 그러면 어떤 항구에 도착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절대 미리 모든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가르쳐주셨습니다. 반드시,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우리는 성장한다는 것을요."

P.371 지난해 결국 하늘나라로 가신 토마스 수사님이 언제나 내게 말했었다.
"사랑은 가시지 않아요. 사랑은 가실 줄을 모르는 거니까."
슬픔도 희석되고 실은 아픔도 아팠다는 사실만 남고 잘 기억되지 않지만, 사랑은 남아 있다는 것을 나는 이제 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젊음아 거기 남아 있어라, 하고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사랑아, 언제까지나 거기 남아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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